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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854

영화) (스포) [혹성탈출] 루퍼트 와이어트의 1편vs맷 리브스의 2,3편.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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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 혹성탈출 루퍼트 와이어트의 1편vs맷 리브스의 2,3편.sf_1.webp

[혹성탈출] 시저 3부작은 겉으로 보면 하나의 자연스러운 연속 서사다.

시저가 태어나고, 인간 문명에서 밀려나고, 유인원들의 지도자가 되며, 끝내 인류 이후의 세계를 여는 이야기.

그런데 감독론적으로 보면 이 3부작은 꽤 뚜렷하게 둘로 갈라진다.

루퍼트 와이어트가 연출한 1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시저가 어떻게 탄생하고 각성하는가에 관한 영화다.

맷 리브스가 연출한 2편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과 3편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그렇게 탄생한 시저가 어떻게 지도자, 왕, 순교자, 신화가 되는가에 관한 영화다.

그래서 이 비교는 단순히 “1편이 더 재밌냐, 2·3편이 더 품위 있냐” 정도의 취향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런 갈림도 있다.

실제로 1편은 가장 직관적으로 재밌고, 2·3편은 더 무겁고 느리며 장엄하다.

하지만 더 깊게 보면 이 3부작은 하나의 캐릭터를 두 종류의 영화적 쾌감으로 통과시킨다.

1편은 시저를 관객이 응원하게 만든다.

2편은 시저를 지도자로 시험에 빠뜨리고 3편은 시저를 역사와 신화 속으로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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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시작]이 한 일은 생각보다 엄청 어렵다.

낡은 SF 프랜차이즈를 현대적으로 되살려야 했다.

인간 배우가 아니라 CG 유인원을 감정의 중심에 놓아야 했다.

“말하는 침팬지가 인류 이후의 주인공이 된다”는 설정을 관객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했다.

이건 잘못하면 정말 우스워진다. 원숭이가 똑똑해지고, 인간에게 반항하고, 결국 유인원들의 지도자가 된다.

텍스트로만 놓고 보면 B급 괴수영화나 만화적 설정으로 빠질 위험이 아주 크다.

그런데 루퍼트 와이어트는 여기서 거대한 신화부터 선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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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먼저 시저를 아이로 만든다.

시저는 처음부터 혁명가도, 지도자도 아니다.

그는 인간의 집에서 자란다. 인간에게 사랑받고, 인간의 언어와 감정을 배우며, 자신이 가족의 일부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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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의 시저는 처음부터 인간을 적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사랑한다.

윌은 그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이고, 집은 세계의 전부이며, 인간 사회는 자신이 속해 있다고 믿는 질서다.

그런데 바로 그 믿음이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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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저는 자신이 인간도 아니고, 평범한 동물도 아니며, 인간 사회 안에 온전히 들어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호소에 갇히는 순간, 영화는 거의 감옥영화가 된다.

시저는 인간에게서 배운 지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그를 결국 동물 우리 안에 가둔다. 

시저는 인간의 지성을 얻었지만, 인간의 권리는 얻지 못했다.

그래서 [진화의 시작]은 단순한 SF 리부트가 아니라, 감금된 지성이 자기 자리를 되찾는 영화다.

이 영화의 구조는 아주 명료하다. 그리고 그 오락영화적 상승곡선이 너무 강하다.

3부작 중 가장 대중영화적이고, 가장 직관적이며, 가장 즉각적으로 재밌다.

관객은 시저가 당할 때 분노하고, 시저가 배울 때 긴장하며, 시저가 반격할 때 쾌감을 느낀다.

[#none](#none)

특히 “No!” 장면은 3부작 전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 한마디는 단순히 원숭이가 말을 했다는 놀라움이 아니다.

그건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거부를 선언하는 순간이며 애완동물로 취급받던 존재가 주체가 되는 순간이다.

1편은 이 한 장면을 위해 달려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언어를 배웠지만, 그 언어로 인간에게 반항하는 존재.

루퍼트 와이어트의 공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은 1편을 가장 좋아한다. “이게 제일 재밌다. 2·3편은 너무 무겁고 폼 잡는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1편은 그냥 상업영화고 진짜 품위는 2·3편에 있다.” 라고 한다.

둘 다 이해된다. 하지만 1편을 “그냥 오락영화”라고 낮추는 건 조금 위험하다.

말하는 원숭이를 관객이 비웃지 않게 하는 일.

CG 유인원을 영화의 감정 중심으로 세우는 일.

인류가 망하고 유인원이 지배하게 되는 세계를 관객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일.

이 모든 것이 1편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2·3편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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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서 [진화의 시작]은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와 닮았다.

1편만 놓고 보면 후속편보다 덜 세련되고, 덜 무겁고, 덜 장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1편이 캐릭터의 정서적 계약을 맺어주지 않으면 후속편의 고급화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초공사는 보통 화려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기초공사가 부실하면 그 위에 아무리 장엄한 성전을 세워도 무너진다.

맷 리브스가 2·3편에서 시저를 정치적·신화적 인물로 밀어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와이어트가 1편에서 시저를 감정적으로 믿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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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리브스가 2편 [반격의 서막]에 들어오면서 영화의 성격은 완전히 바뀐다.

1편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시저는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

2편의 질문 “시저는 어떻게 공동체를 다스릴 것인가?”

1편에서 시저는 감옥을 탈출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는 억압받고 있었고, 관객은 거의 무조건 그의 편에 설 수 있었다.

그런데 2편에서 시저는 이미 지도자다. 그는 아버지이고, 왕이며, 공동체의 법을 세운 존재다.

시저는 인간을 완전히 증오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에게서 사랑을 배웠기 때문이다.

인간의 선함도 알고, 인간과의 공존 가능성도 믿는다.

하지만 유인원 공동체 안에는 인간에게서 고통만 배운 존재들이 있다. 대표가 코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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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그는 시저의 그림자다.

시저가 인간에게서 가족, 언어, 애정을 배웠다면,

코바는 인간에게서 실험, 고문, 폭력, 증오만 배웠다.

둘 다 인간이 만든 존재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기억이 다르다.

그래서 둘의 대립은 “착한 원숭이 vs 나쁜 원숭이”가 아니다.

이것은 피억압자가 억압자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대립이다.

시저는 인간의 선과 악을 모두 안다.

코바는 인간의 악만 안다.

그래서 코바의 증오는 이해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무섭고 한편으로 슬프다. 그는 실제로 인간에게 당했으니까.

문제는 그 상처가 공동체 전체를 집어삼키는 정치적 폭력으로 변한다는 데 있다.

맷 리브스는 여기서 시리즈의 격을 확 올린다.

1편이 “억압받는 자가 탈출한다”는 명료한 카타르시스를 향해 달렸다면,

2편은 “평화가 어떻게 실패하는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전쟁은 갑자기 터지지 않는다.

오해가 쌓이고, 공포가 쌓이고, 기억이 충돌한다.

인간은 유인원을 두려워하고, 유인원은 인간을 믿지 못한다.

시저는 양쪽을 조율하려 하지만, 그의 이상주의는 내부의 분노를 완전히 제어하지 못한다.

악인이 나타나서 평화를 망친 게 아니다. 평화를 망칠 충분한 이유들이 이미 곳곳에 쌓여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영화는 묻는다.

피해자의 분노는 어디까지 정당한가?

평화는 상처를 충분히 기억하지 않고도 가능한가?

지도자는 자기 공동체의 공포를 억누르면서도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 때문에 2편은 단순한 후속편이 아니라, 3부작 전체의 중심축이 된다.

1편의 시저는 억압받는 자였기 때문에 분노하면 됐다.

2편의 시저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분노만으로는 안 된다.

1편에서 관객은 시저가 인간을 향해 분노할 때 통쾌함을 느낀다.

하지만 2편에서 시저가 잘못 분노하면 전쟁이 난다.

그의 감정은 이제 개인의 감정이 아니다.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움직이는 정치적 힘이다.

그래서 2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단순한 SF 액션영화로 보지 않는다. 

원숭이들이 총 들고 싸우는 영화가 아니라, 한 공동체가 전쟁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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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종의 전쟁]은 더 극단적이다.

제목만 보면 관객은 거대한 전쟁영화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인류와 유인원이 대규모로 충돌하고, 시리즈의 최종 전투가 펼쳐질 것처럼 보인다.

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 1st Clip: Meet Nova

하지만 실제 영화는 전쟁영화라기보다 성서극, 포로수용소 영화, 서부극, 복수극, 순교극에 가깝다.

이 점 때문에 3편은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제목이 전쟁인데 왜 이렇게 안 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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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은 블록버스터 제목이 약속하는 액션 쾌감을 일부러 많이 비껴간다.

대규모 전쟁보다 시저의 고통, 복수심, 죄책감, 포로수용소, 행군, 눈밭, 침묵이 더 중요하다.

감독은 전쟁의 스펙터클보다 전쟁이 지도자의 영혼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에 관심이 더 높았다.

3편에서 시저는 가족을 잃는다. 그리고 복수심에 사로잡힌다.

그는 유인원들을 이끌어야 하는 지도자이지만, 동시에 개인적 원한에 끌려간다.

이때 그의 안에 코바가 다시 나타난다.

Koba's Ghost 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

이게 중요하다.

2편에서 코바는 외부의 적이었다. 3편에서 코바는 시저 내부의 유령이 된다.

즉 3편의 진짜 적은 대령만이 아니다. 시저 자신의 복수심도 적이다.

지도자는 적을 이긴 뒤에도 적과 닮아가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질문 때문에 [종의 전쟁]은 가장 무겁다. 

전쟁의 승패보다 중요한 건, 시저가 자기 안의 코바를 통과하느냐다.

Woody Harrelson Says He's Not Doing Brando in '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

2편의 코바와 3편의 대령은 시저를 비추는 두 개의 거울이다.

코바는 피해자의 증오다.

대령은 생존 명분으로 인간성을 버린 권력이다.

대령은 인간 종의 생존을 명분으로 모든 윤리를 포기한다.

그는 인간성을 지키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성을 파괴한다.

말을 잃어가는 병, 종의 퇴화에 대한 공포, 군사 규율, 처형, 수용소.

그는 문명의 마지막 방어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문명이 낳은 광기의 잔재다.

시저는 둘 다 거부해야 한다. 하지만 거부가 쉽지 않다.

코바의 분노는 시저 안에도 있고, 대령의 생존 논리는 전쟁의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유혹적이다.

그래서 [종의 전쟁]은 단순한 인간 대 유인원의 결전이 아니다.

이 영화는 폭력의 기억이 어떻게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변형시키는가에 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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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시작]은 SF 탈출극.

[반격의 서막]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정치 비극.

[종의 전쟁]은 성서적 서부극이자 순교극.

이 3부작은 단순히 스케일이 커지는 시리즈가 아니다.

보통 프랜차이즈는 후속편으로 갈수록 더 큰 적, 더 큰 전투, 더 큰 폭발로 간다.

그런데 시저 3부작은 스케일을 키우면서도 이상하게 안쪽으로 들어간다.

이게 이 시리즈의 독특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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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처음의 여론 갈림으로 돌아오자.

왜 어떤 사람은 1편을 제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2·3편을 더 높게 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영화들이 주는 쾌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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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을 좋아하는 사람은 상승의 쾌감을 본다.

시저가 억압받고, 각성하고, 인간의 감옥을 부수고, 유인원들을 이끌고 탈출하는 과정.

이것은 정말 강력한 오락영화의 쾌감이다. 감정선이 명확하고, 리듬이 빠르며, 관객이 응원할 대상도 분명하다.

1편은 세 편 중 가장 “재밌는” 영화일 수 있다. 이 말은 전혀 폄하가 아니다.

영화가 재미있다는 것은 엄청난 미덕이다.

특히 [진화의 시작]처럼 이상한 설정을 관객에게 납득시키면서도 장르적 상승감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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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2·3편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게의 쾌감을 본다.

시저가 단순히 탈출하는 존재를 넘어, 공동체와 역사와 죄책감을 짊어지는 과정.

코바와의 정치적 대립, 인간과 유인원의 불신, 대령과의 충돌, 자기 안의 복수심을 통과하는 과정.

이건 더 느리고 더 피곤하지만, 더 품위 있다.

둘 다 맞다.

 1편은 저급한 오락영화이고, 2·3편은 고급 영화라는 식으로 나누면 1편의 성취를 너무 깎아먹는다.

반대로 2·3편을 재미없는 예술병이라고 치워버리면, 이 시리즈가 왜 단순한 리부트 이상이 되었는지를 놓친다.

1편이 없으면 2·3편은 너무 거창했을 것이고, 2·3편이 없으면 1편은 잘 만든 리부트 기원담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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