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잭 스나이더 감독은 슬로우모션을 좋아한다.
정말 무지무지막지막지하게 슬로우모션을 많이 쓰는게 특징이다.



물론 슬로우모션은 잭 스나이더만의 독점적 기법이 아니고, 다른 영화들에서도 쌔고빠지게 볼수있다.
그런데 스나이더의 슬로우모션은 유독 기형적이다.
이것은 슬로우모션 자체를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아니라,
슬로우모션을 통해 잡아내는 감독의 목적이 어디인지를 봐야 한다.
다른 감독들은 슬로우모션을 통해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거나,
관객들에게 정보를 주입하거나, 감정의 순간을 늘린다.

스나이더의 슬로우모션은, 영화속 주인공들의 육체를 숭상하는 신앙 간증의 표현에 가깝다.
그는 인물이 누구고, 무엇을 겪었는가보다, 그 인물이 그 순간 어떤 아름다운 이미지로 남는가에 더 강하게 매혹된다.
그래서 그의 액션은 대체로 인물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싸우는가보다,
얼마나 신화적이고 압도적으로 보이는가가 중요한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신화적 초인 액션, 포즈와 충격의 이미지화에는 강하다.

"근데 맨옵스 슈퍼맨 비행씬이랑 돈옵저 배트맨 창고씬은 슬로우모션 없어도 잘찍더만?"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 장면들과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창고전은 분명 표면적으로는 잭 스나이더의 예외처럼 보인다.
아무튼 슬로우모션은 없으니까.
그런데 재미있는건, 그렇다고 이 두 장면을
스나이더가 자기 방식을 버리고 다른 액션 미학을 시도했거나 넘어간 사례는 아니다에 가깝단거다.
오히려 스나이더가 언제나 해오던 “위대한 육체가 장면을 압도하는 순간의 포착”을 탐닉하는것의 연장이다.
속도는 바뀌었지만, 액션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욕망은 바뀌지 않았다.
[맨 오브 스틸]의 전투가 당시 신선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분명하다.
크립톤인들이 싸울 때 카메라는 그들의 육체를 아름답게 붙잡아 늘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인물은 갑자기 화면 밖으로 튕겨나가고, 다음 순간 수십 미터 떨어진 건물이나 도로에 처박힌다.
카메라는 충돌을 뒤늦게 따라가며 급하게 줌인한다.
이건 [300]의 레오니다스와 정반대의 속도다.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5359091#none
레오니다스는 관객이 그의 위대함을 한 동작씩 감상하도록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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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톤인들은 관객이 따라잡지 못할 만큼 너무 빠르다.
하지만 그 둘의 목적은 같다.
“이 몸은 평범한 인간의 몸이 아니다, 너무 위대하고 아름답다”라는 감각을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것.
둘 다 힘의 신화화다.
단지 하나는 감상 가능한 성화이고, 다른 하나는 목격 불가능한 재난이다.
그래서 [맨 오브 스틸]의 액션은 스나이더의 이례적인 탈출이 아니라
그의 육체 미학 탐닉이 크립톤인들이라는 존재에 맞춰 최적화된 결과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창고전은 [맨 오브 스틸]보다도 팬들에게 더 강하게 “이례적인 스나이더 액션”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는 초인들의 비행도 없고, 도시 규모의 파괴도 없으며, 슬로모션으로 늘여진 신화적 전투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배트맨은 창고에 들어가 총 든 용병들을 순식간에 때려눕힌다. 장면은 빠르고, 잔인하고, 동작의 연결도 상당히 읽힌다.
이 장면만 보면 스나이더가 갑자기 슬로모션병 버리고 다른 액션 문법을 받아들였거나, 무술감독 바꿨나보다 이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장면도 자세히 보면 본질적으로 스나이더다.

그는 현실적인 전투 전문가라기보다, 인간의 몸으로 위장한 초인처럼 움직인다.
사람을 상자에 처박는다.
바닥을 뚫고 떨어져 충격 착지를 한다.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한 프레임 안에서 완벽한 배트맨 실루엣을 만든다.
용병을 벽에 내리꽂고, 다른 인물을 와이어로 끌어당기며,
마지막에는 화염방사기와 총기를 둘러싼 상황까지 압도적 힘으로 해결한다.
이 장면의 가장 중요한 쾌감은 “배트맨이 매 순간 올바른 전술을 선택한다”보다도,
배트맨의 몸이 방 안의 모든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무겁고 빠르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순간의 신격화에 탐닉하는 스나이더는 슬로우모션 없이도 배트맨을 신격화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는데.
속도를 늦추지 않은 대신 한 동작마다 코믹북의 한장면같은 순간을 만든다.
배트맨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순간.
총구를 제압하고 상대를 내던지는 순간.
칼을 막고 벽에 상대를 꽂는 순간.
망토가 몸을 감싸며 검은 실루엣으로 정리되는 순간.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만, 동작의 끝마다 여전히 “스나이더 이미지”가 찍힌다.
현실적 액션 연출이면 질문이 보통 이것일 것이다.
저 자세가 제일 빠른가? 저 동선이 제일 합리적인가? 저 프레임에서 생존 가능성이 높은가?
근데 스나이더식 질문은 이쪽에 가깝다.
저 샷이 배트맨 아이콘으로 성립하는가? 저 자세가 프랭크 밀러 배트맨의 감각을 환기하는가?
관객이 그 한 컷만 봐도 “와, 배트맨 그 자체네”라고 느끼는가?

"그러면 그 느낌 그대로 빠른 스타일을 계속 가져갔으면 좋았을텐데,
왜 [스나이더컷] 이후부터는 또 지랄병이야?"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5359091#none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의 테마는 단순한 액션영화보다는 추도, 기적의 목도, 그리고 신앙화 쪽에 더 닿아있었다.
슈퍼맨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기리고, 그의 부재 속에서 영웅들이 모이고, 그가 돌아오고,
그리고 영웅들이 모두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순간.
[맨 오브 스틸] [배트맨v슈퍼맨] 때에서는 테마상 별로 어울리지 않았던 스나이더의 슬로우모션 탐닉이
이번에는 제대로 자기정당화가 가능한 테마였단거다.
(관객들은 그냥 슬로우모션 남발이 싫은거랑은 별개로)

[아미 오브 데드]는 슬로우모션보다도
감독 본인이 촬영까지 맡으면서 생긴 화면질감의 문제가 더 말이 많았으니 그렇다치고,
[레벨 문]에서는 도저히 견뎌줄수가 없는 수준의 "신앙화"가 너무 많이 보이게 된다.
"저항군, 민중의 힘, 이 땅이 만들어낸 곡물, 칼, 총, 영웅들" 모든 소재가 전부
그렇게 "신앙의 대상으로 찬미할" 것으로 보였고,
그 모든걸 잭 스나이더가 직접 만들었다.
잭 스나이더는 모든 것들이 멋있었고, 찬미할 대상으로 보여
고전 회화처럼 자신의 캐릭터들을 모조리 붙잡고 성화로 만들었다.
거의 모든 행동이 “영웅적 순간” 후보가 된다.
전사 모집도, 농민의 노동도, 전투도, 죽음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장중하게 올라간다.
그러면 더 이상 숭고함의 고저가 없다.
그리고 그들이 그저 7인의 사무라이 SF판같고
별로 정도 제대로 못들인 캐릭터들로 보였던 관객들에게는 그게 죄다 안먹혔다.

결국 스나이더의 문제는 느리게 찍는 기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숭배의 이미지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쪽에 가깝다.
움직임을 동세 그 자체로, 인과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보다도
그 움직임의 순간 속 가장 위대한 이미지를 잡아내는데 탐닉하는 감독이다.
그리고 슬로모션은 이 욕망을 가장 쉽게 실현하는 수단이었고.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아미 오브 더 데드], [레벨 문]에서 슬로모션이 다시 비대해진 것은,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이전 방식으로 회귀했기 때문이 아니다.
영웅을 오래 바라보아도 되는 이야기, 직접 통제하는 장르 세계,
모든 인물을 신화화할 수 있는 오리지널 우주가 그에게 주어지자, 그를 절제하던 조건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스나이더는 빠른 액션을 배운 뒤 잊어버린 감독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같은 것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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