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6주 전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되새기기 위해 톰 브램웰의 에디토리얼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 소유권을 죽이고 우리가 웃기를 기대한다"를 가끔 다시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썼을 때 내가 직접 그 기사의 헌정 버전을 다시 쓰게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곧바로 이와 유사한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불과 며칠 사이에 이런 글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다시 써야 할 상황은 더더욱 원치 않았다. 무소불위의 록스타 게임즈가 물리 게임 매체의 최종적인 붕괴를 알리는 첫 번째 도미노를 건드리는 바람에 지난주에 이미 한 차례 글을 써야 했다. 이제는 소니 차례다. 그리고 이번엔 진짜 대형 사건이다.
2028년부터는 출처를 막론하고 디스크로 인쇄되는 플레이스테이션 신작 게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의 플레이스테이션6는 약 1,000달러(한화 약 135만 원) 선에서 가격이 책정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구동할 실물 게임이 없기 때문에 디스크 드라이브가 탑재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물론 이전 세대 게임은 플레이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 이로 인해 무언가를 구매하여 실제로 소유하고 영원히 간직하며 공유하고 판매하고 보존하는 "게임 소유권"의 개념은 완전히 사라진다. 누군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라이브러리에서 임의로 지워버릴 수 있는 영구 임대 개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스튜디오 카날이 제작한 영화 551편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물론 소유권은 이미 대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스팀이나 에픽게임즈의 PC 게임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이 모든 사태의 시작이 스팀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디스크로 게임을 살 수 없게 되면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역시 소유할 수 없다. 보존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디스크는 문제의 일부일 뿐이며 디스크를 단순한 라이선스로 취급하는 개념 자체가 진짜 문제다. 닌텐도 게임 카트리지의 경우 라이선스 취소 여부가 아직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어 어느 정도 소유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다시 팔 수는 있다. 그리고 엑스박스 게임의 경우 솔직히 확률적으로 여러분이 엑스박스를 소유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소유권을 논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불쌍한 초록 팀(엑스박스 진영)을 향한 무차별적인 비난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요점이 있다. 소니의 암울한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엑스박스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들 역시 자학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 대열에 합류하려는 모양새다. 하지만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 소니가 한때 라이벌이었던 세력으로부터 심각하고 실질적인 경쟁을 겪고 있었다면 과면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지난 10년 동안 엑스박스가 플레이스테이션에 맞서기 위해 했던 시도들은 철저하고 한심할 정도로 무력했다. 구조조정을 남발하는 현재의 경영진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 결과 소니는 이제 고성능 홈 콘솔 시장에서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한때 엑스박스는 여러 방면에서 흔들리면서도 최소한 소비자를 위한 진정한 움직임을 이끌어냈다. 전 수장인 필 스펜서 아래에서 진행된 플레이스테이션과의 크로스 플레이 및 PC 버전과의 크로스 세이브 그리고 세대를 아우르는 하위 호환성은 모두 엑스박스가 주도한 이니셔티브(주도권)였다. 이 모든 것은 한 플랫폼을 다른 플랫폼보다 더 나은 플레이 공간으로 만들거나 홍보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선두 그룹을 추월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들을 압박하려는 경쟁적인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그 경쟁이 사실상 끝났고 쇼케이스를 통해 엑스박스가 얻어냈던 짧은 호의의 불씨마저 고블린 초록색의 잔혹한 기업 논리에 의해 바람 속으로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 소니가 소비자의 경험이나 자신들이 조금 악해 보이는지 여부에 신경 쓸 유인책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명확히 해두자면 플레이스테이션 임원들이 직접 무대에 서서 실물 게임의 이점을 세계에 전파했던 과거가 있음에도 실물 게임이 도마 위에 올랐다면 이제 그 어떤 것도 성역이 될 수 없다. 가장 거대한 규범을 깨뜨린다면 다른 작은 규범들도 모두 깨질 수 있다. 하위 호환성부터 기존 가격 책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이는 향후 발생할 여러 거대한 문제 중 하나와도 연결된다. 실물 게임의 소멸은 경쟁의 부재로 이어진다. 그리고 경쟁 부재의 영향은 생태계 전체로 번진다. 콘솔은 이미 비교적 폐쇄적인 정원이지만 게임 구매를 플랫폼 자체의 거래로만 한정 지음으로써 소니는 기업들의 가장 달콤한 꿈인 완벽한 수직 계열화를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독점 형태가 당연시될 것이라 가정해야 한다. 텅 빈 소매점 상자에 대한 수요가 많을 리 없고 플러스 회원 할인과 소비자 직접 광고를 제공하는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대신 아마존이나 지역 소매점에서 코드를 구매할 이유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폐쇄된 정원은 보통 몇 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물건을 구매하고 다운로드하는 과정은 매우 매끄러워지지만 그 대가로 개발자에게는 불리한 거래 조건이 소비자에게는 더 높은 가격과 축소된 권리가 주어지게 된다. 클라우드 저장 데이터나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같은 현대 게임의 비교적 기본적인 기능에 접근하기 위해 비싼 구독료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콘솔 플랫폼의 관행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더불어 스팀이나 애플이 개발자들에게 뜯어내는 수수료의 규모를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디스크를 폐기하는 것은 온갖 결과를 초래한다. 보존 문제는 가장 명백한 사례다. 당일 패치와 상시 인터넷 연결 요구 및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게임의 등장으로 디스크가 더 이상 만병통치약이 아니게 된 지 오래다. 우리는 물리적인 게임 복사본을 구매한다고 해서 그것을 완전히 소유하거나 가장 완벽한 최종 버전을 소유하게 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디스크의 종말과 함께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손실이 동반된다. 게임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상황에서 출시 당시의 원래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실물 오브제는 진정한 유물이 된다. 이는 리뷰어들이 플레이했던 '붉은사막'의 초기 버전을 저장하고 있으며 저작권이 만료된 음악들이 포함된 버전(GTA 6의 사례)이자 전체 업계를 흔들었던 '사이버펑크 2077'의 역사적인 재앙급 기술적 결함이 담긴 버전이자 개발자들이 플레이어들의 반발로 엔딩을 바꾸기 전의 '매스 이펙트 3' 버전을 보존하는 매체다. 역사의 한복판에 있을 때는 그것을 무시하기 쉽지만 비디오 게임을 성숙한 매체로 대우하고 싶다면 우리는 이를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소니가 이번에 말살하려는 게임 공유의 개념 역시 뉴스가 보도된 이후 수없이 지적되어 왔다.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13년 전 E3 2013에서 돈 매트릭의 엑스박스 원 DRM(디지털 저작권 관리) 계획을 완벽하게 조롱하는 즉흥 영상을 녹화한 곳이 바로 플레이스테이션이었다. 그리고 당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CEO였던 잭 트레튼은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 무대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오늘날 플레이스테이션3에서 수용하고 계속 요구하는 모델을 믿는다. 게이머가 PS4 디스크를 구매하면 그 게임 복사본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그들은 소매점에서 게임을 보상 판매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친구에게 빌려주거나 영원히 보관할 수 있다." 원칙을 이용해 큰 홍보 효과를 거두었을 때의 문제는 그 원칙을 버릴 때 그 타격이 두 배로 강하게 되돌아온다는 점이다.
실물 디스크가 사라지면 중고 시장도 사라지며 이는 많은 오프라인 소매점에게 재앙이 될 것이고 소비자가 구매한 물품의 가치를 유지할 능력도 사라진다. 먼 훗날 발견될 다락방의 보물창고는 고사하고 어머니가 깊은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옛날 학교 숙제 밑에서 파낸 오래된 콘솔이 그 안에 저장된 게임을 정상적으로 구동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저장 용량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SSD 가격이 최대 3,000달러(한화 약 400만 원)에 달하는 완전 디지털 미래를 기대해 보라.
더 많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형태가 없는 무형의 무언가가 사라지는 손실이 존재한다. 약 1년 전 멋진 레메디 엔터테인먼트를 방문한 후 헬싱키에서 남는 오후 시간에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국민들에게 준 선물인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디(Oodi)를 방문했다.
그곳은 각 모서리가 기계적인 정밀함으로 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그 위로 나무와 유리가 치솟는 물결을 이루는 놀라운 건물이었다. 거대한 환경 예술가가 하늘에서 직사각형의 3차원 바다 단면을 잘라내어 열린 광장 한복판에 놓아둔 것 같았다. 항상 북적이는 내부에는 영화관과 회의실 및 학습 공간과 수많은 책이 있었고 3D 프린터와 수공예 구역 및 실제 녹음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대여해 주는 악기 벽면도 존재했다. 그리고 비디오 게임도 있었다. 콘솔이 설치된 방과 VR 헤드셋 및 레트로 게임이 구동되는 작은 CRT 모니터까지 갖춰져 있었다.
최상층에는 나무 바닥이 양끝으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 마치 북극으로 향하는 거대한 배에 탑승한 듯한 느낌을 주는 유리벽 아카이브가 있었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유리창 바짝 붙어 앉아 있었고 가족들은 작은 놀이 공간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화책과 그래픽 노블 및 사진과 역사와 건축에 관한 비전문 서적들 사이에서 집으로 빌려 갈 수 있는 게임 타이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바닥에 한동안 앉아 도시의 회색빛 풍경을 바라보며 유토피아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 도서관이 비디오 게임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은 전무하다. 그 어떤 기업도 이런 것에 관심을 두거나 비즈니스적 타당성을 판단하는 결정에 이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의 전부다. 요즘 비디오 게임을 디스크로 구매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비즈니스적 판단일 뿐이다. 디지털 버전을 구매하는 것이 더 저렴하고 편리하며 저항이 극도로 적은 경로이고 그런 경로를 만들면 사람들은 그것을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소니가 이번 결정을 "소비자 선호도" 때문이라거나 "소비자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라고 주장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다. 소비자가 "지갑으로 투표한다"는 개념은 신화에 불과하다 그 누구도 소비자 앞에 그 투표의 전체적인 결과를 제시하지 않았다. 컨트롤러를 손에 쥐고 있는 동안 약간의 할인과 조금 더 빠른 구매를 대가로 내가 사는 물건을 소유할지 아니면 소유권을 포기할지 선택하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의식적이고 신중하며 구체적인 선택을 내리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선택지가 조금씩 녹아내렸을 뿐이다. 디스크 자체가 라이선스가 되고 점점 더 많은 게임이 플레이를 위해 인터넷 연결을 요구하며 출시 이후에도 수많은 패치를 거쳐야 완성되고 오프라인 매장이 점차 죽어가면서 그 선택권 자체가 천천히 침식된 것이다.
사람들은 단기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구매 결정을 내린다. 그들은 보통 가장 저렴하거나 편하거나 빠른 곳에서 구매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자금이 넉넉하지 않고 자유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으로 침식당하는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은 상시 온라인 연결과 당일 패치 등 매 단계마다 수많은 목소리를 냈다. 윤리적 소비자의 개념과 기업의 결정을 전적으로 소비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비즈니스 세계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홍보 업적 중 하나다. '탄소 발자국'이라는 단어는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이 발명했다.
게임이 물리적 영역에서 무형의 영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발생하는 진짜 손실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과의 유대감 상실이다. 그것을 만든 모든 사람들과 나를 연결해 주는 만질 수 있고 잡을 수 있는 실물 형태의 부재다. 그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직접 건네며 눈을 바라보고 정말 멋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회의 상실이다. 현실 세계의 상점이나 도서관 혹은 친구 집으로 가서 선반을 둘러보는 재미의 상실이다. 카운터 뒤의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벼룩시장에서 거래를 하는 경험의 상실이다. 유독 특별한 게임의 고급 수집가용 에디션을 선택해 집에 전시해 두는 즐거움의 상실이다. 우리가 대가로 얻는 것은 소외감뿐이다. 예술 자체 및 그것을 만든 사람들과의 거리감과 단절이다. 이것은 대안과 비교해 측정할 수 있는 숫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을 서로 멀어지게 만드는 것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실재하며 그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이 세상 그 누구도 그것이 당신의 선택이었다고 말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