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바타] 후속편의 지구 설정을 두고, 의외로 자주 나오는 비판이 있다.
애초에 지구가 환경오염과 생태 파괴로 망해가고 있어서 인류가 살 곳을 찾아 판도라를 침탈한다는 설정 자체가 실책이라는 것이다.
1편처럼 희귀자원을 더 캐고 싶어 하는 기업의 탐욕만 다뤘다면 관객은 훨씬 쉽게 나비족에게 이입할 수 있었을 텐데,
후속편에서 “인류 생존”이라는 명분이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둘 다 살고 싶은 종족의 동등한 투쟁처럼 변해버렸다는 주장이다.
이 말에는 아주 제한적인 타당성이 있다.

드라마의 선악 구도만 놓고 보면, 단순한 자원 욕심은 관객이 받아들이기 쉽다.
나쁜 기업, 군사화된 개발, 원주민 탄압. 이 구도는 익숙하고 명확하다.
반대로 지구가 정말로 죽어가고 있고 인간이 살 곳을 찾는다는 설정이 들어오면 질문은 불편해진다.
“그럼 인간들은 그냥 죽으라는 건가?”라는 반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이 비판은 수상해진다.
이 설정은 이야기를 망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바타]가 피하지 않으려는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생존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침략은 정당해지는가.
자기 세계를 망친 문명이 다른 세계를 향해 “이제 우리가 살아야 하니 네 세계를 내놓으라”고 말할 때,
그것은 비극인가, 아니면 비극의 얼굴을 한 식민주의인가?

무엇보다 지구는 가만히 잘 살다가 우주적 재앙을 맞은 세계가 아니다. 무슨 갑자기 운석충돌이라도 날아온것도 아니고,
지구의 파멸은 원 착취, 생태 파괴, 기업권력, 군사주의, 기술만능주의, 생명 경시가 누적된 결과다.
물론 이것이 지구의 모든 인간 개인에게 같은 죄를 묻자는 뜻으로 이어질수는 없지만 그 비극성이 RDA의 침탈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질문은 더 분명해진다. 문명을 망친 책임을 왜 판도라가 떠안아야 하는가.
인간이 살고 싶다는 욕망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나비족의 터전, 툴쿤의 생명, 에이와의 생태계를 밀어낼 권리가 되지는 않는다.

“둘 다 살고 싶은 종족의 투쟁”이라는 말은 그래서 너무 많은 것을 지운다.
원인도 지우고, 책임도 지우고, 침입의 방향도 지운다.
마치 두 집단이 같은 땅을 우연히 두고 다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구조는 한쪽이 자기 집을 태워먹은 뒤 아직 온전한 남의 집으로 무장하고 들어오는 상황이다.
이것을 동등한 생존투쟁이라고 부르는 순간, 침략의 비대칭성은 사라진다.

그래서 “이 설정 때문에 나비족에게 이입할 수 없다”는 말은 단순한 서사 비판을 넘어선다.
그것은 종종 “인간의 생존”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다른 존재의 생존권을 자동으로 2순위에 놓는 반응처럼 보인다.
인간은 절박하니까 이해해야 하고, 나비족은 아름답지만 결국 양보좀 해줘라, 아니면 붙어서 이기는놈이 다 갖는게 순리다 식.
바로 그것이 [아바타]가 의심하는 인간중심주의다.
희귀자원 욕심만 남겼다면 이야기는 더 쉬웠을 수 있다. 관객은 편하게 RDA를 욕하고 끝났을 것이다.
지구 멸망과 인류 생존이라는 명분이 들어오면서, 영화는 훨씬 불편한 곳으로 간다.
후속편의 설정은 실책이라기보다, 작품의 윤리적 난이도를 올리는 장치에 가깝다.
문제는 영화가 나비족에 대한 이입을 망쳤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어떤 관객이 “인류 생존”이라는 말 앞에서 얼마나 빠르게 타종족의 생존권을 상대화하는가를 드러낸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