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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4
"사진작가"라는 직업을 제대로 인식시키고, 사진계의 교과서라고 불린 사람
여기 한 소년이 있었다.
1924년 오랜 학살 끝에 황폐해진 고향과 그 고향을 압제한 오스만 제국을 뒤로 하고
한 소년의 가족은 캐나다로 이주하게 된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의 손에는 새로운 꿈이 들려있었다.
사진가 삼촌에게 선물 받은 작은 카메라.
카메라로 셔브룩을 뛰어다니며 찍은 풍경은 소년에게 처음으로 거금의 상금 50 달러를 쥐어주었다.
소년은 의사 대신 사진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John H. Garo의 초상, 1931년 작)
삼촌은 소년의 꿈을 지지해주고 도와주었다.
미국 보스턴에 살던 친구이자, 같은 아르메니아계 이민자인 초상 사진 전문가 존 가로(John H. Garo, 1875 - 1939)에게 보내
소년을 한 명의 사진작가로 교육시켜 주었다.
(본인과 John H. Garo의 초상, 1930년 작)
소년은 어느새 청년이 되었고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수많은 기술과 사진 철학을 배웠다.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하라.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면 기록하라. 예술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스승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안고 청년은 보스턴을 떠나 제 2의 고향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로 돌아가 사진관을 세웠다.
(B. K. Sandwell의 초상, 1939년 작)
오타와로 돌아간 그에겐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의 스튜디오는 작고 검소했으며, 때론 집세를 위해 자기 비서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었다.
그러던 그에게 두 번째 인연이 다가왔다.
당시 Saterday Night 잡지의 편집장이던 샌드웰이 우연히 방문을 하였고,
둘은 금세 친해져 잡지에 사진을 정기 투고를 하게 되었다.
(Lord and Lady Bessborough of Canada, 1935년 작)
샌드웰의 도움으로 친구하나 없던 오타와에서 점점 친구를 늘려가던 그에겐 생애 두 번째 기회도 같이 다가왔다.
아마추어 배우 모임인 오타와 리틀 시어터 (Ottawa Little Theatre)에 초대 받아 그곳 배우들의 사진을 찍어주던 그의 앞에
당시 캐나다 총독 배스버러 경이 나타났다.
배스버러 경의 아들이 그 아마추어 배우 중 하나 였던 인연으로 청년은 총독과 그 부인의 사진을 찍어주게 된다.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첫 사진에 초점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했지만 너그러운 부부의 이해로 두 번째 사진은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 사진은 캐나다 전역의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실기며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되었다.
(Franklin Roosevelt, Mackenzie King, Lord Tweedsmuir, August 14, 1936 작)
배스버러 경과의 인연은 그의 후임 트위즈뮤어 경과도 이어지게 되었다.
1936년, 캐나다 역사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방문을 하게 되었고, 이 자리엔 트위즈뮤어 캐나다 총독, 매킨지 킹 캐나다 총리
그리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있었다.
청년은 그 현장을 촬영해 달라는 초대를 받아 위 사진을 찍었고, 이는 곧 그의 명성을 한 단계 더 올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삶에 세 번째 인연을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총리 매킨지 킹과 친분을 가지고 후원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러던 1941년 12월, 그는 킹 총리의 초대를 받아 국회의사당을 방문하였다.
한 위대한 인물의 초상 사진을 찍어주면 고맙겠다는 제의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대영제국의 총리가 캐나다 자치령을 항해 명 연설을 하던 중이었다.
총리는 사진 촬영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조명을 키는 순간에도 짜증을 냈고, 그의 일행들은 비웃기 시작했다.
총리는 어디 찍을 테면 찍어보란 표정으로 시가를 한 대 물고 장난스레 찍어보라 했다.
청년은 각오를 하고 대영제국의 총리 앞에 다가가
정중히 사과하며
그의 입에서 시가를 낚아채었다.
그가 카메라로 돌아왔을 때, 총리는 사진가를 집어삼킬 만큼 호전적인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 순간, 청년은 그 표정과 빛의 대비를 담아 한 순간을 사진 속에 담아내었다.
(Winston Churchill "Roaring Lion", 1941년 작)
이 한 순간을 담아낸 사진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복사본을 가지리란 사실을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이 담아낸 이 사진은 67세의 윈스턴 처칠 총리를 세상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Winston Churchill, 1941년 작)
촬영이 끝나자 처칠은 어이없는 듯 혹은 내가 졌다라는 생각으로 그에게 사진 한 장을 더 찍어줄 것을 부탁하고
위의 유한 표정의 사진을 한 장 더 남긴다.
그리고 자신에게 당혹감과 카리스마 이미지를 안겨준 사진작가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당신은 으르렁거리는 사자도 가만히 사진 찍게 할 수 있군."
유서프 카쉬
1908~2002
인물사진계의 교과서라고 불리며,
역사적인 인물들을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조명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처칠의 시가를 빼앗아서 표정이 저렇게 나왔음.
이 사진으로 유명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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