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 감독의 신작을 볼 때면 관객은 자꾸 유언을 찾는다.
이것이 마지막영화인가 될까, 그는 결국 무엇을 남기고 떠나게 될까.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 리들리 스콧,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비슷한 나이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후기작에는 분명 삶의 반추의 기색이 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는 자신을 영화에 빠뜨린 고전 할리우드로 돌아갔고,
[파벨만스]에서는 마침내 그 모든 영화의 출발점이었던 가족을 직접 꺼냈다. 부모의 이혼, 어머니의 욕망, 아버지의 선량한 무력함,
그리고 카메라가 진실을 발견하게 해주는 동시에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도구라는 사실까지.
그는 평생 이런 이야기를 외계인과 전쟁, 모험 속에 숨겨두었지만 노년에 이르러 은유를 걷어냈다.
[파벨만스]는 자신의 영화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를 밝히는 작품이자, 그 기원을 한 번 정리해버리는 영화였다.
그래서 2026년의 [디스클로저 데이]가 묘하다.
삶을 한 차례 정리한 감독이 다시 가장 오래된 이미지, 밤하늘과 외계인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미지와의 조우]와 [E.T.]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시도라기보다, 자신이 평생 믿어온 감정이 아직도 유효한지 확인하는 일처럼 보인다.
타자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 가능한 존재이며, 서로의 말을 듣는 순간 인간은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
스필버그는 세상이 더 냉소적으로 변한 뒤에도 그 오래된 낙관을 버리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는 약간의 불길함도 있다.
물론 그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새로운 스필버그 영화가 나올 때마다 그것이 미지의 영역인지 스필버그 회고전의 마지막 구간인지 구분하기가 조금씩 어려워진다.
제임스 카메론은 아직 자신의 삶을 돌아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바타]는 그가 평생 원했던 거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궁극의 세계다.
자연과 기술, 바다와 비행, 기계와 육체, 식민주의와 전쟁, 사랑과 가족이 모두 판도라 안에 들어간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이제 [아바타]는 그만 만들고 다른 영화나 찍어라”라고 말할 때 그가 유난히 단호하게 반발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판도라는 그의 감옥이 아니다. 스스로 그곳을 낙원으로 선택했고, 그 선택을 재능 낭비라고 부르는 외부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카메론의 행보에서는 전과 다른 조바심이 보인다.
[아바타]를 포기하고 싶은 조바심이 아니라, [아바타]를 만드는 동안 다른 영화들이 영원히 태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자각이다.
젊은 카메론에게 영화 한 편에 몇 년을 쓰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필요한 기술이 없다면 만들 때까지 기다리면 됐다.
그러나 지금 몇 년은 남은 필모그래피에서 영화 한두 편이 사라지는 시간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아바타] 후속편의 제작기간과 비용을 줄일 방법을 찾고 있다.
[빌리 아일리시 히트 미 하드 앤 소프트 3D]를 짧은 기간에 촬영한 뒤에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빠르게 완성할 수 있는 비밀 프로젝트까지 구상중이다.
카메론의 황혼이 불길한 이유는 그의 꿈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성공적으로 거대해졌기 때문이다.
[아바타]는 그의 궁극의 총집편이지만, 궁극적 작품 하나가 한 예술가의 모든 가능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는 이제 완벽한 한 편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여러 편 사이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리들리 스콧에게는 그런 고민조차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그의 태도는 “삶의 황혼기에 무엇을 정리할 것인가”보다 “내가 왜 죽어, 시발련들아”에 가깝다.
그는 [라스트 듀얼], [하우스 오브 구찌], [나폴레옹], [글래디에이터 2]를 연이어 찍고 다시 다음 프로젝트로 향한다.
2026년에도 [더 도그 스타스]와 여러 차기작이 이어진다.
영화 한 편을 마지막 선언처럼 준비하기보다, 오늘 찍을 장면이 있으니 오늘도 살아 있다는 식이다.
재미있는 것은 후기 스콧의 영화들이 온통 몰락하는 제국을 다룬다는 점이다.
구찌 가문은 자기 이름 때문에 무너지고, 나폴레옹은 세계를 정복한 뒤 자신의 육체에 갇힌다.
[글래디에이터 2]의 로마는 이미 썩었지만 모두가 그 왕좌를 탐낸다.
그는 영화 안에서는 늙은 권력과 제국의 쇠퇴를 반복해서 찍으면서, 정작 영화 밖에서는 자신의 프로덕션 제국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물론 그 속도의 대가도 있다. 최근작들의 완성도는 크게 출렁이고, 어떤 영화는 각본의 허점을 이미지와 규모로 밀어붙인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스콧은 마지막 걸작 한 편을 준비하는 대신,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동안 가능한 한 많은 영화를 현실에 밀어 넣는 쪽을 택했다.
무엇이 오래 남을지는 나중의 문제다. 그가 황혼기에 붙잡는 것은 특정한 메시지라기보다 일 그 자체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제일 극단적이다.
노년의 거장은 보통 자기 유산을 관리한다.
그러나 코폴라는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이 보장해준 명성을 안전하게 보존하지 않고, [메갈로폴리스]라는 오랜 꿈에 자기 전 재산과 이름을 걸었다.
영화의 완성도가 그 야심을 전부 감당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마지막까지 거장으로 기억되는 안전한 길보다 후회하지 않을 자유를 택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기 유산을 박물관에 넣지 않고 장작으로 모조리 불살라 올렸다.
그리고 이들보다 더 멀리 간 자리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다.
후기 이스트우드는 점점 작은 목소리로 영화를 만들었다. [설리]와 [리처드 주얼]에서는 영웅을 만든 뒤 제도와 여론이 그를 어떻게 심판하는지 바라봤고,
[배심원 #2]에서는 타인을 심판해야 하는 사람이 정작 자기 죄를 숨기고 있을 가능성을 다뤘다.
젊은 이스트우드의 인물들은 판결을 집행했지만, 늙은 이스트우드는 누가 타인을 판단할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한다.
2026년 현재 그의 차기작은 뚜렷하지 않고 은퇴 여부도 명확하지 않다. 만약 [배심원 #2]가 마지막 영화라면 묘하게 적절하다.
거대한 작별 대신 끝내 내려지지 않은 판결 하나를 남기고 조용히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니까.
이들이 황혼기에 붙잡는 것은 서로 다르다. 스필버그는 기억과 낙관을, 카메론은 아직 만들지 못한 미래를 붙잡는다.
스콧은 일 자체를 놓지 않고, 코폴라는 마지막 도박에 유산을 건다. 이스트우드는 판단을 유보한 채 침묵 쪽으로 이동했다.
노장의 영화는 반드시 유언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삶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뒤에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아직 영화가 끝나지 않았는데 왜 벌써 자기 삶을 완결형으로 말하느냐는, 서로 다른 다섯 가지 항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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